상상에 해당하는 글 1개
  1. 그리고 나서는?, 2006/08/18 (4)

열대야가 한창일때는 땀 뻘뻘 흘리면서 잘 잤었는데, 요즘 들어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취침시각은 계속 늦어지고 자연스럽게 기상시각도 늦어진다. 덕분에 지금 당장 유럽에서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시차로 진입한지 오래다.
어제도 역시 혼자 방바닥을 구르며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나는 갖가지 상상을 한다. 내가 만든 상상에서 열심히 뛰다 보면 어느새 지쳐 나도 모르게 잠이 들게 된다. 주로 현실 속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상상하는데, 예를 들면 천재라든지 운동을 잘한다든지, 어제의 주제는 '돈많은 나'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실수령금 20억 정도의 로또에 당첨된 나.
일단 새로운 아파트를 하나 구하고. 아냐, 그냥 여기다 새로 집을 지을까. 난 1억만 있으면 괜찮겠는데. 소형차를 한대 뽑고. 아, 면허부터 따야되는구나. 근데 뭐, 속성으로하면 3일이면 되는걸. 카메라도 사야지. 중형카메라로. 무겁긴 해도 차가 있으니까 상관없을거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꽈악 물고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더이상 꼬리를 물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뭘 해야하나. 20억의 내 상상력이 감당해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까짓거 남는 돈은 저금해버리면 되니까. 문제는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할까. 지금보다 좋은 집에 좋은 음식에 좋은 카메라를 차에 싣고 다니면 과연 난 행복해질까.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일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되려 과외해서 번 돈으로 카메라와 자전거를 사서 다니는 지금보다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싶었다.
내가 지금 제일 갖고 싶은 컴퓨터와 24인치 모니터를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샀을 때의 그 두근거림, 짜릿함, 기대감을 당첨금으로 샀을 때는 느낄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잠이 확 달아났다.
by 사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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